[내 귀에 경제사] 1994년 2월 4일, 악몽 같았던 금리 인상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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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월 4일, 미국 연준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갑작스럽게 기준금리를 3.0%에서 3.25%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금리는 6차례 더 올라 불과 1년 만에 6.0%까지 급상승했습니다. 예고 없는 금리 인상에 시장은 크게 동요했고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가격 폭락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충격은 금방 중남미로 번졌습니다. 멕시코는 주가 폭락을 견디지 못해 결국 외환위기에 빠져 국제통화기금 IMF의 구제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고 이후에 아시아로까지 퍼지면서 나중에는 대한민국에도 외환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참혹했던 그때를 가리켜 ‘채권시장 대학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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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 인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3월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금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 연준이 금리를 조절할 때 통상적으로 0.25%포인트 단위로 변동했는데, 이번에는 0.5%포인트를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데요. 아주 오래전 연준의 결정으로 금융시장이 그토록 크게 동요했던 걸 기억해 보면 지금의 상황을 반드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 귀에 경제사 시즌2 첫 번째 시간, 오늘은 지난 1994년 2월 전 세계를 혼란스럽게 했고 현재에도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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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자세

미국 연준이 이렇게 금리 인상을 서두르는 것은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그 때문에 취임 1년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도 곤두박질쳤습니다.

현재 미국처럼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터키인데요. 신기하게도 터키는 지난해 무려 네 차례나 금리를 낮췄습니다. 금리를 올리면 기업들의 생산단가를 높여 오히려 물건값이 오르고 그렇게 되면 기업의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이유로 말이죠.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지만,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는 두 나라, 미국과 터키. 과연 물가를 잡으려면 미국처럼 금리를 높여야 할까요? 아니면 터키처럼 금리를 낮춰야 할까요?

이 질문이 쉬운 것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인데요.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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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와 물가의 관계

화폐경제가 생긴 이래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돈을 빌리는 사람한테 요구하는 금리가 있었지만, 그 금리와 물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고민한 것은 200년이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바로 금리조절 자체를 아주 불경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6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이자를 받는 것 자체를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고, 이슬람 세계에서는 지금도 율법 ‘샤리아’에 따라 이자를 받지 않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6세기 초에 이르러서 기독교 세계에서는 이자 수취가 합법화되었음에도 이자를 함부로 조절하는 것은 어쩐지 불편하고, 껄끄러운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이자를 조절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포샤: 샤일록,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 마음은 없는가?
샤일록: 전혀 없습니다. 저는 약속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포샤: 그렇다면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가슴살을 1파운드만 떼시오
샤일록: 후후후후…
포샤: 잠깐..!! 가슴살을 베어내되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됩니다!
샤일록: 그…건 불가능 한 일이 아닙니까..!
포샤: 만약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된다면..당신의 재산은 국법에 따라 모두 몰수될 것입니다!


16세기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그때의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중앙은행은 1746년부터 1822년까지 4명의 총재가 바뀌는 무려 76년 동안 단 한 번도 금리를 조절하지 않았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농경사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경기변동을 겪고 나폴레옹 전쟁을 치르면서도 금리를 조절한다는 생각을 못 하고 연 5%로 버텼던 것입니다.

프랑스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1820년부터 1847년까지 2년 동안 연 4% 금리로 견뎠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랜 시간 금리와 물가의 관계를 생각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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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와 물가의 관계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이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지만, 의외로 금리와 물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습니다. 금리를 낮추면,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서 경기가 좋아지고 물가가 오른다는 것을 막연한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뿐, 그것을 이론적으로 깊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초, 저명한 금융이론가이자 은행가였던 토마스 투크(Thomas Tooke)는 ‘물가의 역사’라는 책에서 금리와 물가가 정비례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쉽게 말하면 “금리를 올리면 물가도 오른다”는 것인데, 처음에 사람들은 이 이론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약 100년 뒤인 1928년에 깁슨(A.H. Gibson)이라는 은행가가 수십 년간의 사례를 조사해 본 결과. 토마스 투크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제이론이 흔들리자 경제학자들이 쩔쩔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의 마침표를 찍은 건 오늘날 거시경제학을 만든 존 메이나드 케인즈입니다. 케인즈는 깁슨의 이론을 금리와 물가를 피상적으로 관찰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물가수준을 보지 말고, 그 변화율 즉, 물가상승률을 보면 장기금리와 물가상승률은 분명히 반비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제서야 주류 경제학자들이 안도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이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케인즈는 깁슨이 발견한 사실에 ‘깁슨의 역설(Gibson’s Paradox)‘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보통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유명한 역설이 몇 개 있는데, 금리와 물가 간의 정비례 관계도 거기에 견줄만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의미를 크게 부여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은행이 생긴 지 300년이 넘고, 이자 수취가 합법화된 지 500년이 넘었는데, 금리와 물가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90년 정도밖에 안 되었고 금리를 통해서 물가를 조절하는 관행이 생긴 지는 아직 30년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금리와 물가에 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현재의 분위기가 이해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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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와 물가, 금리와 금융시장의 관계

금리와 물가 그리고 금리와 금융시장의 관계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2015년에 제로금리를 탈피한 이후 여러 번 금리를 인상했지만,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에는 미 연준이 목표금리를 높였는데도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미 연준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을 그 상황을 보고 마치 수수께끼 같다고 하여 코넌드럼(Conundrum)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상황이 이 정도이니, 금리를 조절하는 중앙은행들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리조절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이 자주 접촉하여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무슨 식당을 가고 무슨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주 만나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아주 기본적인 연예의 기술 같은 말입니다.

지금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금리를 인상하고 있지만, 지금의 사태가 가깝게는 금융시장, 멀게는 물가에 어떤 속도로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잘 모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런 상황들을 계속해서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원고 및 자문: 차현진 작가 (<금융 오딧세이> 等 著, 삼프로 TV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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